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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대를 통일하며 에도 막부를 열었던 인물로도 잘 알려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대기의 연표'와 '대표적인 사건'에 대해서 알기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목차

1.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표
2 연표 내의 대표적인 사건
  2-1. 시즈가타케(賤ヶ岳) 전투
  2-2. 세끼가하라(関ヶ原)전투
  2-3. 오사카의 진(陣)
3. 핵심정리

 

1.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표


(연령)
일어난 일
1543년
(0세)
(현)아이치현 오카자키시에서 마츠다이라 히라타다의 장남으로 태어남
1549년
(8세)
(현)시즈오카현 동쪽을 지배하고 있었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인질이 됨
1555년
(13세)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인질인 채로 성인식을 맞이하고 이마가와의 친척이었던 세나공주와 결혼함
1558년
(16세)
생애 첫 전투로 스즈키 시게타츠와의 전투에 참가하여 승리, 
1560년
(18세)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와리국'을 지배하고 있던 오다노부나가에게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패배하자 자유의 몸이됨 
1562년
(20세)
'키요스 동맹'을 통해서 오다 노부나가와 손을 잡음
1563년
(21세)
도쿠가와 이에야스라고 불려지게됨
1568년
(26세)
(현)야마나시현을 지배하고 있던 '다케다 신겐'과 협동 공격으로 이마가와의 영토를 빼앗음
1572년
(30세)
사이가 나빠진 다케다 신겐과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싸우고 크게 패배하게 됨 
1575년
(33세)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나가시 전투'에서 다케다 신겐의 아들은 '다케다 카츠요리'와 싸워서 승리함
1582년
(40세)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그의 부하인 '아케치 미츠히에'에게 배신당하고 죽은 뒤의 후계자를 정하는 회의(키요스 회의)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손자인 '오다 히데노부'를 후계자로 정함
1583년
(41세)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뒤의 그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시바타 가츠이에'가 권력을 둘러싸고 전투(시즈카타케 전투)를 벌이고 이 전투에서 도요토미의 편에 가담하여 시바타에게 승리함
1584년
(42세)
오다 노부나가와 이바타 가츠이에를 사라진뒤 권력을 손에 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 노부나가의 차남인 '오다 노부카츠'는 불만을 가지고 전쟁을 하게되는데 이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노부카츠의 편에 섰었기 때문에 이에야스와 히데요시의 사이가 나빠졌지만 약 8개월간의 전쟁(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뒤에는 다시 원래의  관계를 회복함
1586년
(46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계를 회복한 후 그의 부하로 들어감
1590년
(50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로 부터 (현)시즈오카/야마니시/나가노/기후의 일부 지역 들의 영토를 부여 받고 그 이후에는 관동 지방인 (현) 도쿄의 치요다구에 있는 에도성을 본거지로 함
1598년
(58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이 나자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로 후계자로 지정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포함한 5명의 원로들이 그를 도와 정치를 하게함.
1600년
(59세)
히데요시가 죽고 나자 또 다시 권력 쟁탈전이 시작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과 같은 히데요시 부하 였던 이시다 미쓰나리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크게 물리 치며 일본 전국을 지배 함
1603년
(62세)
세이이 대장군으로 임명 되면서 "에도막부"를 시작
1614년
(73세)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로 일본의 전국을 지배하게 된 도카가와 이에야스 였지만 그의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도요토미 일가를 공격하는데 이것을'오사카의 진(겨울)' 이라고 부르고 있고 이후에 양 진영은 잠깐  관계가 희복됨
1615년
(74세)
일시적으로 관계를 회복했던 도쿠가와와 도요토미 가문은 또다시 사이가 벌어져 싸우게 되는데 이를 '오사카의 진(여름)'이라고 부르며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는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 시켜버림
1616년
(75세)
도쿠가와 이에야스 병환으로 사망함

 
 
 
 

2. 연표 내의 대표적인 사건들

①시즈가타케 전투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나자 후계자로 노부나가의 손자였던 "오다 히데노부"를 지지했지만 동시에 노부나가의 세쩨 아들 "오다 노부타카"를 후계자로 지지했던 "시바타 카츠이에"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시즈가타케'라고 불리는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편으로 참전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되어 결국 "오다 히데노부"가 후계자 되지만 당시 히데노부가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사실상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②세키가하라 전투

센고쿠 시대를 평정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둔 채  자신의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로 후계자로 선정하며 지방의 막강한 다이묘들 5인에게 히데요리를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지만 어린 히데요리를 지원하던 그들 사이에서 경쟁과 야욕이 일어나고 그중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동군)와 이시다 미쓰나리(서군)의 사이가 안 좋아져 결국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전투를 세키가하라 전투라고 부르고 있고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여 일본 전국을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③오사카의 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하며 (현)도쿄에 에도 막부를 새우고 2년 뒤에는 아들인 '도쿠가와 이에시게' 역시 대장군으로 임명하여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모두에게 알리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일본 전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유키와 그의 어머니인 네네만이  도쿠가와를 거역하며 따르지 않자 도쿠가와는 히데유키가 있는 오사카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겨울의 오사카의 진'이라고 합니다.
'겨울의 오사카의 진'에서 필사적으로 방어를 했던 도요토미 히데유키는 일시적으로  도쿠가와와 화친을 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속적인 화친을 위해서 도쿠가와가 요청했던 약속들에 대해서 도요토미 히데유키가 따르지 않게 되자 이번에는 도쿠가와가 도요토미 가문을 전멸시켜 버리는데 이것을 '여름의 오사카의 진'이라고 합니다.
 
 

3. 핵심 정리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현재 아이치현(愛知県)오카자키시(미가와 국)에서 태어남
  • 어린 시절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에 의해서 인질로 생활함
  • 그의 유명한 전투는 나가시노 전투/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세키가하라 전투/오사카의 진 이었음
  •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로 살아오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며 이후에 200년간 이어지는 애도 막부를 설립함
  • [오사카의 진]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쓰러뜨리고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 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