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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오다 나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버금가는 일본 센고쿠(戦国) 시대의 무자 다케다 신켄(武田信玄)에 대한 '일대기', '유명 전투'등에 대해서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 다케다 신겐의 일대기에 대해서
2. 다케다 신겐의 대표적인 전투에 대해서
  2-1 도이시붕괴(砥石崩れ)
  2-2 카와카지마 전투(川中島の戦い)
  2-3 미카타가하라 전투(三方ヶ原の戦い)
3. 마무리 정리

 

1. 다케다 신겐의 일대기에 대해서

년(연령) 일어난 일
1521년
(0세)
현재의 야마나시현의'카이국(甲斐国)'을 수호했던 다케다노부토라(武田信虎)의 적통으로 태어남
1536년
(16세)
성년식 이후에는 다케다 하루노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산조노카타(三条の方)와 결혼해서 2년후에는 적통인 다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가 태어납니다.
1541년
(19세)
아버지인 다케다 노부토라를 '스루가국'으로 추방하고 다케다가문의 당주가 됩니다.
1542년
(20세)
타카토 요리츠구(高遠頼継)와 함께 추방(諏訪)령에 침공하고 추방 지역을 평정 합니다.
1547년
(25세)
분국법 신겐가법[甲州法度之次第]을 제정 해서 가신단의 통제나 치안에 대한 규정을 정할수 있게 됩니다.
1548년
(26세)
우에다하라의 전투에서 '북시나나국'의 호족인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義清)'에게 패배를 합니다.
이때 '이타가키 노부타카(板垣信方)', 아마리도라야스등 수많은 가신을 잃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 시오지리토오케(塩尻峠)전투에서  '시나노국'을 수호하고 있는 '오가사와라 나가도끼(小笠原長時)'에 승리합니다.
1550년
(28세)
'오가사와라' 영토를 침고 하고 '시나노국'의 중부를 제압합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토이시성을 공격해 '토이시붕괴(砥石崩れ)'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큰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1551년
(29세)
'사나다 유키츠나 (真田幸隆)'의 책략을 통해서 '토이시성'을 함락하고 2년후에 시나국의 동부를 모두 제압하는 것을 성공합니다.
1553년
(33세)
에치고국(越後国)의 우에스기 신(上杉謙信)과 제1차 카와나카지마(1次川中島)전투를 하게되고 향후 4년간 전투가 이어져도 결판은 나지 않습니다.
1554년
(34세)
사가미(相模)국의 호조 세력과 스루가노(駿河)국의 이마가와 세력 간에 '고소슨삼국동맹(甲相駿三国同盟)'을 맺습니다.
1559년
(38세)
출가 이후에 하루노부(晴信)에서 신겐(信玄)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1561년
(41세)
제 4차 가와나카지마(第四次川中島)의 전투에서  북시나노의 땅을 제압하는 것을 성공하지만 동생인 다케다 노부시게(武田信繁) ,야마모토 간스케(山本勘助)등을 잃게 됩니다.
1564년
(44세)
제 5차 가와나카지마(第四次川中島)의 전투에서 신겐은 우에스기 켄신과 결정을 피하고 전쟁은 서로 대립만 하다가 끝나버립니다.
1565년
(45세)
아들인 '다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는 가신 아부 토라마사(飯富 虎昌)와 모반을 기획하다가  감금되고 그 2년후에는 자해를하고 4남인 '다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가 후계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이마가와 세력과 호조세력간의 동맹은 파기되고 맙니다.  
1568년
(48세)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함께  이마가와 영토인 스루가(駿河)를 공격하고 이 지역을 평정합니다.
1569년
(49세)
미마세고개 전투(三増峠の戦い)에서 호조 세력의 오다와라성(小田原城)을 공격하지만 함락하지 못하고 퇴각을 하는데 이때 다시 공격 해오는 호조세력을 공하면서 격퇴를 하여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1571년
(51세)
호조와의 동맹을 부활시킵니다.
1572년
(52세)
아시카가 요시아끼(足利義昭)의 노부나가를 쳐치하러 가는 길목에서 도쿠가와의 영토에서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の戦い)'전투를 치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크게 승리를 거둡니다.
1573년
(53세)
병상이 악화되어 가이국(甲斐国)에서되돌아 오는 길에 병으로 사망하게됩니다.

 

2. 다케다 신겐의 대표적인 전투에 대해서

 

(1) 토이시붕괴(砥石崩れ-1550년)

토이시붕괴는 다케다 신겐이 시나노국을 평정할 때 "무라카미 요시키요'와 벌인 전투를 말합니다.

다케다의 병력이 7000명, 무라카미의 병력이 500명으로 병력의 차이가 있었지만 다케다가 병력을 1000명을 잃어버릴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고 합니다. 다케다신겐이 생애에서 불과 2번뿐이었던 패전이었지만 그 2번의 패전 모두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義清)'에 의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2) 카와나카지마(川中島-1561년) 전투

카와나카지마 전투는 다카다신겐이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과 시나노북부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입니다. 카와나카지마 전투는 총 5번 치루어 졌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것이 제4회 차 전투였다고 하는데 전투에는 신겐과 신겐의 동생인 '다케다 노부시게(武田信繁)'와 일본의 대하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도 자주 등장했던 '야마모토 간스케(山本勘助)'도 사망 했을 정도로도 유명한 전투입니다

 

(3)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の戦い-1572년) 전투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교토로 이동하는 도중에 미가와(三河)에 침공한 다케다 켄신과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벌인 전투입니다.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의 요청에 응한 원정 중의 전투 중에 하나로 신겐은 약 2시간 만에 압승을 거두었는고 이전투는 도쿠가와는 일생일대의 가장 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거지상(しかみ像)'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초상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도 합니다.

 

 

3. 마무리 정리

다케다 신겐의 연표를 보면 센고쿠의 유명한 무장의 모습처럼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습니다. 인생 일대에 단 두 번만 전투에서 패배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동세대의 무장은 물론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센고쿠 시대의 유명한 무장들에게도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하지만 신겐의 생에는 그의 아버지인 다케다 노부토라의 추방과 같은 혈연관계의 문제들이 눈에 띄어 센고쿠시대에서 최정상의 장수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절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하네요.